저는 사회적경제가 만드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일과 삶에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조합원입니다.
낯선 변화를 수용하는 법
그림 1. 2003년 런던에서 처음 시작한 ‘슬립 노 모어’는 공연 전문 창작 집단 펀치드렁크가 제작했다. 뉴욕, 상하이에 이어 올해 7월 서울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얼마 전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라는 공연을 보고 왔어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이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공연을 보는 방식인데요. 이런 걸 몰입형(immersive) 공연이라고 하더라고요. 같은 공연이지만 어느 배우를 따라다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의 선택에 따라 볼 수 있는 장면과 볼 수 없는 장면이 갈리죠. 다행히 같은 내용이 3차례 반복되기에 놓친 장면을 다시 볼 기회는 있습니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헤매다 보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싶어요. 휴대폰이고 스마트워치고 모든 전자기기는 전원을 끈 상태로 봉인되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나는 어디쯤을 헤매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온전히 공연에 몰입하게 됩니다. 배우를 따라다니다 놓쳐 낯선 공간을 헤맸는데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와 신기한 소품들까지(소품은 모두 만져볼 수 있습니다), 그 헤매는 시간마저도 허투루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충무로의 상징이었던 대한극장이 리모델링되어 전용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1층부터 7층까지 3시간여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유산소 운동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공연을 보러 가실 분들 꼭 편한 신발을 신으셔야 합니다!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아쉬움과 함께 이 공간이 어떻게 사용될지 걱정이 들었는데 말이죠. 막상 전혀 새로운 쓰임으로 변한 공간을 겪고 보니 변화를 마냥 부정할 일은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림 2. 매키탄 호텔은 옛 대한극장을 개조해 만든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 전용 공연장이다.
원칙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변화, 다양성, 연대. 좋은 의미로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지만, 막상 이 단어들을 내 인생에 받아들이고 실제로 겪으며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필요하고 중요하단 이야기는 쉽게 하지만,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매번 잘 작동하지 않아요.
어느 순간 제 주변에 저와 비슷한 사람들만 있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의 비슷한 생각에 기대어 갑니다. 그 편안함 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은 닫혀있죠.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접하면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않아요. 툭툭 불거지는 불편함이 새로운 기회의, 변화의 문일지 모르는데 말이죠.
흔히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한 면만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할 수 없어요. 마음대로 규정짓고, 심지어 그 부정확한 규정이 전부라고 재단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입체적인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협동조합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협동조합은 소비자, 노동자, 금융, 농업 등 다양한 모델로 분화됐고, 현대에는 사회적협동조합과 같은 새로운 형태도 등장했죠. 협동조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흔히 협동조합의 운영 지침으로 이해되는 ‘협동조합의 원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메인대학교 워링 교수 등이 함께 작업한 논문 'Institutional adaptation in the evolution of the co-operative principles(2022) Waring, T., Lange, T., & Chakraborty, S. (2022)'을 살펴보면, 협동조합의 원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혁신을 통해 계속 변화합니다. 예를 들어, 1966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신용 거래가 안전해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초기 원칙 중 하나였던 ‘현금 거래(Cash Trading)’ 조항을 삭제합니다. 그리고 더 큰 협동조합 경제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협동조합 간 협동’의 원칙을 추가하죠. 지금은 너무도 중요한 원칙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원칙은 1995년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고요. 이는 협동조합을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협동조합의 원칙이 절대적인 도덕적 지침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협동조합이라는 독특한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진화시켜 온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고요.
자연드림도 지금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죠. 변화는 때로 불편합니다.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일은 언제나 두렵고요. 때론 과거의 정답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제의 최선이 오늘의 최선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지 함께 고민하는 과정 같아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변화의 방향을 조합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협동조합다운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인상 깊은 말이 있어 적어봅니다. “오늘의 상황이 달라지면 사람은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하고, 오늘의 상황이 어제와 같아도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능력을 얻으면 사람은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상황을 해석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능력, 지금 우리와 협동조합에 필요한 유연함이 아닐까요?